여성해방전선 이상 없다

여성해방전선, <여성해방전선 이상 없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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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 나혜석, <이혼고백서> 중 (1934)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구라파도 아프리카도 중화민국도 여성이 남성의 권력과 통제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공간이었던 적은 없다.

나혜석이 살고 죽었던 20세기뿐만 아니라 잔다르크가 살고 죽었던 15세기도 매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살고 죽었던 18세기도 메두사가 살고 죽었던 신화 속 청동기도 여성이 오직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해방을 누리는 시간이었던 적은 없다.

“여성해방전선 이상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한반도의 21세기도, 다르지 않다.

무수히 스러져간 이름 모를 그녀들을 불러본다. 뱃속에서 화장실에서 사회에서 낙태되고 살해되고 자살당하고 장터에서 일터에서 배움터에서 인형되고 안방에서 다방에서 전철에서 매를 맞고 골목에서 모텔에서 군대에서 강간당하고 키스방에서 노래방에서 오피방에서 5만원에 7만원에 18만원에 노리개되고 무대에서 법정에서 책속에서 배제되고 차별받고 모함당한 그녀들을 불러본다.

그곳이 어디든 그때가 언제든 그녀들이 우리를 꼭 찾아왔음 좋겠다. 우리의 공간은 여성해방국 여성해방시 여성해방구 여성해방동. 우리의 시간은 여성해방년 여성해방월 여성해방일 여성해방시. 그녀들과 함께할 공간 그녀들과 함께할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는 오늘도 여성해방 최전선에서 불침번을 선다. 여성해방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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