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리아 드워킨, “가정폭력 피해 여성 살아남다” 中 (1978 미국)

살아남은 여성의 분노는 살인적이다. 그녀의 분노는 그녀를 아프게 한 그에게보다는 그녀 자신에게 더 위험하다. 그녀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경우일지라도 살인을 믿지는 않는다. 죽음이 그가 받아 마땅한 것보다 자비로운 벌일지라도 살인을 믿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가 죽기를 바라지만 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죽기를 바라는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여성의 정신은 서늘할 정도로 냉철하다. 그녀가 수년의 시도 끝에 자신이 그 안에서 파괴될 뻔한 공포와 폭력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이후, 그녀는 누구에게도 쉬이 속거나 조종당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를 여성으로서 통제해온 사회적 전략들과 그녀를 그녀가 타고난 가능성들의 일개 그림자로 축소시킨 성적 전략들을 꿰뚫어 본다. 그녀는 그녀의 삶이 로맨틱한 착시나 성적인 환각에 절대로 속아넘어가지 않는 데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살아남은 여성의 혹독한 감정은 그녀와 가장 가까운 이들을 포함한 타인들에게 차갑고 단호하며 가차 없이 강렬해 보인다. 그녀는 현존하는 괴로움을 측정하려 하지 않을 만큼 괴로움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지만 자기연민을 경멸한다. 그녀는 자기방어적인데 이는 그녀가 오만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무너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잔 프롬버그 섀퍼의 아름다운 소설 <안야>에 등장하는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 안야가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나는 괴로움에 대한 불신을 배웠다. 괴로움은 죽음의 한 형태다. 충분히 격렬한 괴로움은 독이다.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죽여버린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희로애락의 감정들 중 일부가 죽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괴로움이 죽음의 원천이 아니라 삶의 원천인 양 괴로움에 심취한 이들을 믿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녀는 살아남지 못한 이들을 추모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영혼 속에서 그녀는 과거의 그녀와 현재 같은 처지인 이들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그녀의 삶 속에서 그녀는 살아남고, 성장하고, 행동하고,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여성들의 능력과 의지를 기념하는 사람이자 그에 대한 산증인이다. 그리고 해마다 그녀는 더 강해진다. 해마다 그녀들은 더 많아진다.


앤드리아 드워킨, “가정폭력 피해 여성 살아남다,” 전쟁터에서 온 편지, 105-106 (1989). 이 글은 “낫지 않는 멍”이라는 제목으로 1978년 7월 마더 존스 잡지 3권 6호에 처음 실렸다.

Andrea Dworkin, “A Battered Wife Survives,” Letters from a War Zone, 105-106 (1989). “A Battered Wife Survives” was first published under the title “The Bruise That Doesn’t Heal” in Mother Jones, Vol. III, No. VI, July 1978.

번역: 김나영 (nayoungkim@feminis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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