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네나디치, “페미사이드: 제노사이드를 이해하는 틀” 中 (1996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여성들이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전지구적으로 파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의 사회적 종속의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재앙이 있어야 우리가 여성이라는 분명한 사회집단이 파괴되고 있다는 깨달음과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길러 우리의 정체성의 근본적인 요소로 삼을 수 있을까? 우리에 대한 어떤 잔혹 행위가 마침내 세상의 양심을 뒤흔들어 우리가 우리 자신이 말살될 가능성을 직면하고 대비하게끔 할까?[1]

여성혐오의 역사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고 다양한 문화에 기초한 강렬한 순간들을 포함한다. 예컨대 – 주로 서구의 경험을 인용해 얘기하자면 – 고대 그리스의 대규모 성노예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을 불태워 죽인 유럽의 마녀사냥, 아프리카 여성들에 대한 대규모 강간과 강제임신을 자행한 미국의 노예제, 19세기 여성들에 대한 의학적 실험, 홀로코스트 시기 여성들에 대한 범죄, 그리고 세계 2차대전 시기 일본군이 한국 여성 및 아시아 여성들에게 저지른 성적 잔혹행위들이 있다. 여성들에 대한 공격에는 이처럼 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특정한 방식의 공격 말고도, 여성들과 소녀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체계적인 차별과 성적 학대를 통한 파괴가 있다. 이러한 침해는 성적괴롭힘, 대상화, 강간, 폭행, 친족성폭력, 아동성폭력, 낙태금지와 강제낙태, 모성금지와 강제모성, 강제불임수술, 성매매, 성적 살인, 그리고 포르노그라피 – 여성들과 소녀들에 대한 위와 같은 침해 중 대부분을 오락물의 형태로 촬영한 근현대적 산물 – 를 포함한다.

역사 속에서 여성들에 대한 잔혹 행위는 그 행위가 발생한 당시에는 여성이라는 특정한 집단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피해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성들에 대한 잔혹 행위를 간과했다. 여성들에 대한 잔혹 행위는 매번 모습을 바꾸며 정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연결되지 않는 사건들의 형태로 역사에 다시 출현했다. 집단으로서의 여성들은 그동안 우리에게 벌어진 잔혹 행위가 반복되지 못하도록, 우리가 그 잔혹 행위를 절대로 망각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집단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긴 기록을 가지지 못했다. 역사의 주요 저자는 남성들이었고 남성들은 역사의 어떤 부분을 감추고 어떤 부분을 드러낼지를 조심스럽게 골랐다. 특히, 남성들은 그들이 여성들에게 저지른 수많은 범죄를 숨겼고 그에 대해 침묵했다. 여성들에 대한 광범위한 범죄를 의미하는 페미사이드는 과거에도 일어났지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은 페미사이드로 인식되지 않았고 역사에 남는 방식으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과거에는 여성들에 대한 범죄를 정치적 동기가 있는 범죄로 인지할 수 있는 일관적인 이론 체계가 없었다. 그러한 이론 체계에 가장 가까운 것이 페미니즘 – 여성 운동과 관련되어 사회적 삶과 종속에 대해 납득할 만한 분석을 만들어내는 실천 – 이지만 페미니즘은 근현대에 형성됐기에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다. 페미니즘은 역사 속에서 여성들에 대한 잔혹 행위들과 교차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적이고 광범위한 여성들에 대한 범죄들의 존재와 발생, 그러한 범죄들이 남성우월주의 체제 속에서 수행하는 정치적 기능, 그리고 그러한 범죄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여성의 종속을 이해하는 일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페미사이드는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 페미사이드로 인식되고 기록된 첫 페미사이드다. 그 일이 일어난 때에 그 일을 페미사이드로 인식하는 페미니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의 제노사이드는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무슬림 여성들과 소녀들은 세르비아인들의 강간/살인 수용소에서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일이 세상의 양심을 뒤흔들어야 할 여성들에 대한 잔혹 행위다. 지금 여기에서 이 여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잔혹 행위는 세상 모든 곳에서 여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성적 학대와 종속을 드러내기도 한다.

[1] 1976년, 앤드리아 드워킨은 그로부터 100여 년 전인 1870년에 서프러제트 지도자 수잔 B. 앤서니가 어떤 사건이 있어야 이 나라의 여성들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는지 질문한 것에 응답하며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드워킨은 “평화” 시기의 강간에 대해 묻는다. “자매들이여, 강간이 바로 그 사건이 아닌가? 여성들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존엄성을 찾는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앤드리아 드워킨, 강간이라는 잔혹 행위와 평범한 남성, 우리의 피: 성정치학에 대한 예언과 담론들 48-49 (1976). Andrea Dworkin, The Rape Atrocity and the Boy Next Door, Our Blood: Prophesies and Discourses on Sexual Politics 48-49 (1976).

[2] 캐서린 A. 매키넌은 근현대 페미니즘의 주요 이론가들 중 처음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에서 페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론을 정립했다. 캐서린 A. 매키넌, 강간, 제노사이드, 그리고 여성인권, 하버드 여성법학지 17호 5-16 (1994). Catharine A. MacKinnon, Rape, Genocide, and Women’s Human Rights, Harvard Women’s Law Journal, 17 5-16 (1994). 생존자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국제법상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앤드리아 드워킨,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전쟁이라는 진짜 포르노그라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1993년 9월 5일, M2. Andrea Dworkin, The Real Pornography of a Brutal War Against Women, Los Angeles Times, M2 (1993, September 5).


나탈리 네나디치, “페미사이드: 제노사이드를 이해하는 틀,” 래디컬하게 말하자면, 460-462 (1996).

Natalie Nenadic, “Femicide: 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Genocide,” Radically Speaking, 460-462 (1996).

번역: 김나영 (nayoungkim@feminis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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